10월의 예술 칼럼 (1)

무의식적 욕망의 세계,  꿈의 세계를 그리다

현실도 꿈처럼 재미있는 일만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꿈속에서는 하늘을 날기도 하고, 거대한 괴물을 무찌르기도 하며, 보고싶었던 사람을 수도 있죠. 오랫동안 사람들은 꿈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기이한 꿈을 사람들은 꿈이 무슨 의미를 내포하는지 걱정이나 기대를 하며 해몽을 찾아보기도 하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부분 각자 태몽을 가지고 있죠. 어떤 사람들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암시하는 예지몽을 꾼다고 합니다. 이처럼 꿈은 실제의 현실이 아닌 다른 신비로운 세계이죠.

꿈은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영감이 되었습니다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장면들은 소설이나 미술작품의 주제가 되었죠과연 꿈은  꾸는 것이며꿈이란 무엇일까요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세계가 바로 꿈이라고 했습니다프로이트는  연구를 하며 꿈을 과학적으로 해석할  있다고 보았죠.

캐링턴, <자화상>, 1936-37
초현실주의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해방과 회복이다. 꿈을 통해 드러나는 무의식인 이상적인 의식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 상상력의 보고이다. 그림을 통해 현실적인 공간과 비현실적인 공간을 넘나들며 깊고 넓은 무의식의 세계를 탐색할 있는 끊없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영향을 받은 미술가들이 있습니다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글니 미술사조를 초현실주의라고 합니다그래서 ‘초현실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리 속에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시계가 흘러내리는 그림이 떠오르곤 하죠초현실주의 그림들은 매우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이며 환상적입니다마치 꿈의 세계처럼그러나 꿈의 세계는 낭만적이지만은 않죠초현실주의에 대해서 한가지 오해하기 쉬운 점은 초현실=비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부분입니다엄밀히 말하자면초현실은 비현실이 아니죠

아슬아슬한 경계의 기준: 패러디, 오마주, 표절에 대해서

1919년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타계한 지 400주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그를 기억하고자 <모나리자> 엽서가 길거리에 등장했어요. 모나리자는 이미 그 오묘한 미소로 프랑스를 넘어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 예술가가 만인의 연인 모나리자의 얼굴에 턱수염을 그린 것으로도 모자라서 ‘L.H.O.O.Q’ 라고 이름을 붙였던 거죠. 마치 명작의 권위에 도전이라도 하듯 과감한 시도를 한 이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이었어요.

이미 <샘>으로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예술가의 만행(?)에 모두가 또 한번 깜짝 놀랐습니다.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은 개념미술의 선구자이자 20세기 현대미술의 개척자로 불리는 예술가입니다. 초기에는 인상주의와 입체주의 등 다양한 화풍으로 작업했지만 이후 예술에 대한 물음표를 던진 <샘>을 출품하면서 미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인물이죠.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를 예술 작품으로 볼 수 있을까.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예술작품을 접한 이들이라면 뒤샹의 와 <샘>을 보고 의아할 수 있습니다. 이미 난해하고도 어려운 예술작품들을 수없이 접했기에 ‘겨우?’라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죠. 그런데 이러한 ‘예술=난해하다’라는 인식을 심어준 장본인 중 한 명이 마르셀 뒤샹인 것이죠. 그는 온전한 창작 작품만을 예술로 봐야 할지, 기성품도 예술가의 손을 거친다면 예술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 의문을 품었고 이는 곧 전통미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좌) 만 레이가 촬영한 마르셀 뒤샹, 우) 마르셀 뒤샹 <샘> @tate.org.uk

이러한 생각은 <샘>을 통해 대중에게 던져졌죠. 작품의 조형성보다 개념이 우선되는 개념미술을 선보였고, 뒤이어 모나리자에 수염을 그린 후 성적인 조롱이 담긴 문구도 등장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에는 그의 가 미술작품의 ‘패러디’예시에 소개가 되고 있어요. 마르셀 뒤샹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현대 미술시장에서 패러디, 오마주, 그리고 표절에 관한 부분까지 다양한 사례로 이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어디까지가 패러디이고, 어디까지를 오마주와 표절로 봐야 하는 것일까요? 

감성 인테리어의 완성, 마티스

앙리 마티스의 명랑한 그림이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작성한 칼럼 한 편 소개합니다.

요즘 생전 관심이 없었던 인테리어에 흥미가 생겼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머무는 공간을 취향에 꼭 맞게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아니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돌아다니면 종종 마주치는 #홈투어, #인테리어, #집꾸미기에 올라온 갬성 가득한 사진들을 보다 보니 없던 욕심이 생긴 건지도 모른다. 참고가 될 만한 사진들을 한참 들여다보던 중,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인스타에 올라오는 정방향 사진 속에, 웬만하면 마티스의 드로잉이 있었다. 저 Nadia with smooth hair가 가장 흔하고, 푸른 누드 시리즈도 종종 눈에 띈다. 그렇다. 인스타용 감성 인테리어의 완성은 마티스였다. 반 고흐나 피카소, 세잔의 그림을 벽에 걸어두는 집은, 적어도 내 피드에선 못 봤다.

앙리 마티스, 푸른 누드 2, 1952

나 또한 인테리어 소품을 사야 한다면 벽 한편에 마티스의 ‘푸른 누드’를 걸고 싶은데, 다들 보는 눈이 비슷한 걸까 아님 나도 결국 유행에 따르는 걸까. 내 취향대로 꾸미고 싶다는 마음엔 나만의 개성이 묻어있는 공간을 원한 거였는데… 그렇지만 이만큼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그림이 없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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