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예술 칼럼 (2)

서양화 vs 한국화, 쉽게 이해하기

서양화와 한국화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서양인이 그리면 서양화, 한국인이 그리면 한국화일까요? 그렇다면, 한국인이지만 서양화가로 불리우는 작가는 없는 걸까요? 서양화와 한국화, 이 두 개의 개념에 관해 이야기 하는 칼럼 하나를 소개합니다. 다 읽었을 때 서양화와 한국화의 구분이 스스로 뚜렷할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시켜줄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서양화와 한국화, 두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작품의 유형에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서양화는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와 같은, 한국화는 신윤복의 <단오풍정>과 같은 작품이 떠오를 것이다. 두 작품의 차이는 눈으로 봐도 확연히 다르다.

좌)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 우) 신윤복 <단오풍정> 《혜원 전신첩》

서양화와 동양화에 대한 구분은 1920년에 ‘동양화’라는 명칭이 쓰이면서 시작되었다. 과거 조선 후기 청나라에 다녀온 사신들에 의해 서양화의 기법이 도입된 후, 1922년에 조선총독부 주최로 열린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동양화’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에 ‘동양화’가 일제에 의해 붙여졌다는 비난을 받게 되었고, 뒤이어 ‘한국화’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자존감과 자존심 

하루에도 숱하게 낙심시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불황에 그게 되겠어?” “안 하는 게 나아” “그 분야에 실력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현실이 그러니까 너도 그렇게 될 거야. 날 위해주는 말 같지만, 사실은 한없이 낙심을 불러일으켜 시작도 못 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많은 예술가가 이런 낙심시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절망스러운 일들이 그들에게 계속 이어졌고, 그들은 불행하고 불운한 사람으로 비추어졌죠. 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나, 초상-풍경. 1890년. 프라하 국립미술관

사실주의 화가로 유명한 루소, 그를 좋아했던 시인 아폴리네르는 이런 말을 했답니다. 

“루소만큼 거센 비난을 받았던 예술가는 없었다. 그러나 루소만큼 쏟아지는 비난을 대범하게 받아넘긴 예술가도 없었다.”  

독학출신인 루소는 자기를 향한 멸시와 비난에도 스스로를 아주 위대한 화가라고 생각합니다. 후대였던 피카소와 자신만이 당대 최고의 화가라고 말할 정도로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지요. 어떻게 루소는 강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시카고 미대 학생들은 어떤 작품을 할까?  “Grad Open Studio Night “에 다녀와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학교’에 선정된 곳, 시카고 예술 대학교. 그곳의 미대생들은 어떤 작품을 하며, 그 작품이 상업 갤러리까지 발표되기 전까지. 그들의 스튜디오를 구경할 수 있는 오픈 스튜디오 나잇 ‘Grad Open Studio Night’ 에 다녀온 후 작성한 글 한 편을 소개합니다.

아마추어 작가를 넘어선 현업 프로작가들도 많았다. 어쩐지 완성도와 밀도가 확연히 뛰어난 수준의 작가를 발견할 때마다 의아했는데 이미 작가로서 어느 정도의 반열에 오른 사람도 교수진과의 심도 있는 크리틱을 얻거나 본인의 작품세계의 발전을 위하여 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보통 교수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가는 한국의 일반적 석사학위의 목적을 생각하면 어쩌면 배움에 대한 본질적인 가치의식이 우리와 다르다 생각된다. 

한 가지 더 놀랐던 점은 이 학교에 입학할 때 성 정체성 매뉴얼이 담긴 책을 나누어 주는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성적 다양성에 관하여 설명되어있다고 한다. 서로의 다름과 취향을 존중을 무작정 요구하기 전에 습득시켜 다양성이 공존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학교의 인권의식과 감성에 감동을 받을 지경이었다. 어쩌면 그런 환경이야 말로 예술가의 잠재된 어떤 것을 최상치로 끌어내 주는 것이 아닐까, 진정 예술학교가 예비 예술가에게 제공해야 하는 필수 요소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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