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 록라인이 겨우 37세의 나이로 1934년 4월에 죽었을 때, 그녀는 명성의 정점에 있었다. 러시아 태생의 이 이민자는 1921년 파리로 이주한 후 꽤 유명해졌다. 오비투아리는 ‘비할 수 없는 손실’과 ‘확실한 재능’에 대해 말했다. 미술 평론가 마리우스 아리 르블론은 그녀를 ‘수 년 동안 파리 미술이 겪은 가장 고통스러운 [모멘텀] 중 하나’라고 한탄할 정도로 그녀를 ‘위대한 베네치아인들과 르누아르의 자매’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화가는 죽은 후 수십 년 동안 거의 잊혀졌다. 2002년 몽파르나스 미술관에서 열린 단체 전시회인 엘레스 드 몽파르나스(Elles de Montparnasse)에서 소니아 들로나이, 타마라 데 렘피카,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같은 여성 동료들과 함께 그녀의 작품이 전시된 후에야 그녀의 그림이 새롭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